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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3-11-14 (화) 12:03 조회 : 878
성소와 정류장

노란 페인트 바랜 그늘 안으로

털 빠진 억새 그림자 들었다

장산리와 옥계 사이로 털털거리며

콤바인이 지나간 자리에

바람의 자국이 남았다 

햇살을 꽃치마에 받으며 쭈그려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두 노인 

주거니 받거니 햇살을 입으로 받아 우물거렸다 곧게 펴질 리 없는 그림자가 둥글게 말렸다 낡은 할매의 뱃가죽처럼 쭈글쭈글한  

가랑이 사이에서 

쫙, 펼쳐진 꽃치마 

시간이 머물지 않을 것 같은 정류장에 놓인 의자는 못 빠진 지 오래 

그대를 앉히기엔 깊은 소리 가득이다 

정류장 가생이에 억새가 붙잡고 있는 건 

이 빠진 자리 햇살이다 

주름으로 우물거리는 

정류장 햇살이다 

- 박경희 <정류장>

금요일마다 비가 내렸지요. 지난 금요일에도, 지지난 금요일에도. 심방 마치고 돌아 나온 지하철역 3번 출구, 아뿔싸 우산이 없었답니다. 큰비 아니니 맞고 가자 했으나, 아내는 기어이 비닐우산을 사들었습니다. 저만치 먼저 내뺀 남편과 우산 들고 종종걸음으로 따라온 아내가 다시 만납니다. 제 몸 하나 가리기도 모자라 보이는 작은 우산, 그 반쪽 하늘을 남편에게 건네더랍니다. 남편의 왼편과 아내의 오른편이 고스란히 젖는 이인삼각 같은 빗길 몇 걸음, 머리만 안 젖으면 되는 거라고 깔깔거리며 완주합니다. 비와 우산과 서로 걸친 어깨가 얽히고설켜 ‘사는 맛’에 감칠 더한 비 내리는 ‘성금요일’ 오후였습니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빠짐없이 쨍한 건 아닙니다. 햇살 들지 않는 날이 있지요. 천둥 벼락이 하늘을 쪼개고, 칠흑 같은 어둠이 대낮을 내쫓는 날이 있습니다. 그깟 우산으로는 턱없는, 세간을 둥둥 떠내려가게 하는 홍수 날이 있습니다. 내 발자국조차 확인할 수 없는 짙은 안개에 목이 졸리는 것 같은 날, 있습니다. 햇살 한 줌이 한없이 그립고, 그래서 그 한 줌 햇살이 그렇게 원망스러운 날입니다. 산다는 게 난데없이 엄한 것이어서 준비도 없이 그런 날을 맞게 되지요. 갈까 말까를 망설이고 더러는 살까 말까를 고민하게 되는 고약한 날입니다. 몇 번을 더 망설이고 몇 번의 고민을 더 얹어 살다 저기 저 ‘정류장’에 앉습니다.

‘바랜 것들’의 안쓰러움이 있습니다. “노란 페인트 바랜” 간이 정류장의 ‘그늘’은 어쩐지 딱해 보입니다. 그 그늘엔 “털 빠진 억새 그림자”가 들고, “털털거리며” 지나간 콤바인 ‘바람 자국’만 남습니다. 거기에 오래 묵은 인생의 ‘기다림’이 “둥글게” 말려 있습니다. 그게 그네들이 지나온 한평생의 ‘모양’일 테지요. 언제 한 번 ‘곧게’ 펴고 살지 못했던, 하여 “곧게 펴질 리 없는 그림자.” 빛바랜 정류장, 그 쭈글쭈글한 그림자에게 누가 뭐 한다고 시간을 내줄까요. “못 빠진 지” 이미 오래된 정류장 ‘낡은 의자’에는 “시간이 머물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낡은 할매의 뱃가죽”이나 머물다, 기다리다, 일어서는… ‘낡은 시간’ 이 서성입니다. 

‘낡은 정류장’, “낡은 할매의 뱃가죽”으로 손님처럼 햇살 한 줌이 찾아듭니다. 얼마나 고마운 방문인가요. 감사헌금 올려놓듯 정성껏 “꽃치마”를 펼쳐 햇살을 받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그 햇살을 입으로 받아 우물거립니다. 낡은 정류장에는 햇살 모양도 반듯하지 않아요. 여기저기 이 빠진 정류장엔 햇살도 이 빠진 모양으로 들지요. 외려 그게 더 어울립니다. ‘찬란한 태양’에 눈이 부실 지경이라면 노인네 둘, 등 돌려 차라리 그늘을 찾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정류장 햇살”은 “주름으로 우물거리는” 중입니다. 햇살의 겸손이고, 햇살의 성육신입니다. “장산리와 옥계 사이” 이름 없이 낡은 정류장이 햇살 머무는 ‘성소’입니다. 

“등불을 켤 때에는 일곱 등잔을 등잔대 앞으로 비추게 할지니라(민수기 8장 2절)”는 말씀을 읽습니다. 성소의 ‘등불’을 밝히는 방법을 일러주시는 말씀이지요. ‘등불을 켤 때에는’ 등잔을 ‘등잔대 앞으로’ 비추게 해야 합니다. 뒤로 감추거나 아래로 숨기는 ‘등불’은 성막을 비출 수 없습니다. 등잔의 등불은 태양같이 타오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자칫 성막 다 태워 먹습니다. 그저 등잔에 담긴 등불만으로 충분합니다. 성막 어둠을 걷어내고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만큼이면 됩니다. 그늘 걷어내는 데는 한 줌 햇살만큼의 빛으로 충분합니다. 저기 ‘그늘’ 이 있고 여기 ‘빛’이 있습니다. 성소와 정류장이둘이 아닙니다. 평강.^^

이창순 목사 (서부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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