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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살아야만 하는가 의구심이 몰려오면
내담자는 상담자인 내게 눈물이 글썽인 채 말했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꼭 살아야만 하나요?” 청년기에 자주 나 자신에게 묻던 질문입니다.
‘꼭 살아야만 하는가?’ 하는 기본적인 명제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해 힘들어하는 나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만나주셨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할 때 마음의 어둠은 사라질 것이고, 사랑을 나누는데 24시간이 부족한 삶을 산다면 ‘꼭 살아야만 되는가?’ 하는 질문은 더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며칠 전 상담실을 찾아온 내담자,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내담자에게 이렇게 말을 건넵니다.
“당신은 2억 대 1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생겨난 존재입니다. 2억 마리의 정자가 결국 한 마리의 난자를 만나 임신을 하게 되니 말입니다. 또한 당신과 같은 존재는 온 세상에 단 한 사람뿐입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라 세상에 유일한 예술품과 같은 존재입니다. 5만 원짜리 지폐가 비록 꾸겨져 있더라도 그 가치는 여전합니다. 지금 당신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을지라도 당신은 여전히 가치가 있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주님이 당신에게 생명을 주셨을 때는 분명한 계획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 어부 세바스찬이 거대한 상어와의 투쟁에서 남은 것은 앙상한 가시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부로서 최선을 다한 그의 삶에 우리는 큰 박수를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혹시 당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고난과 좌절로 인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요. ‘사어안락 생어우환(死於安樂 生於憂患)‘이라는 다산의 말처럼 별을 보려면 어둠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세찬 물살에도 어깨위의 짐보따리 때문에 넘어지지 않고 지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찾아갈 때 죽음의 속삭임을 멀리할수 있습니다. 거짓된 자기의 모습은 비통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 비통감이 분노의 원인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 삶의 진짜 위기는 진정한 자기(Real self)로부터 단절되는 것입니다. 현대의 인간은 소외된 존재, 고독에 피투된 존재라고 합니다. 소외 중에서도 대상에 대한 소외(Inter personal isolation)보다 더 아픈 소외는 자기로부터의 소외(Intra personal isolation)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나를 포장 없이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이 절실합니다. 내 포장을 내가 뜯어야 합니다.자신이 누구인지 알 때 골밀도 높은 넓적다리로 우뚝 설 수 있고 죽음의 그림자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죽을 수 없습니다. 한 외로운 영혼이 또 하나의 외로운 영혼을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나무 위에서 떨어지는 새 한 마리 다시 나무 위에 올려줄 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되지 않으리’라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구처럼 그런 삶이라면 충분히 가치 있는 삶입니다. 또한 나를 사랑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기에 부조리하고 외로운 인생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외로운 행성 지구별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우정은 신의 선물입니다. 제가 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라는 저서의 제목은 아들을 하늘나라 보내고 죽음이 삶보다 훨씬 쉬웠을 때,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죽지 못했음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죽지 말고 오늘을 버텨보자고 눈물로 다짐했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이 93세에 쓴 글 ‘황금의 노년기’ 에서 그는 고백합니다. 산을 오를 때 보이지 않던 들풀이 다들 너무 아름답게 보인다고 말합니다. 인생은 참으로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한, 삶은 기쁨입니다. 눈부시게 찬란한 해돋이와 해 질 무렵 노을의 냄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생명을 내어주는 일,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는 일, 들러리의 기쁨, 이 꽃의 암술과 저 꽃의 수술을 연결하여 꽃이피게 해주는 꿀벌의 기쁨 등 세상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들이 보석처럼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길 수 있습니다.
꿈이 있는 한 살아낼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내게 맡기신 그 작은 꿈을 찾으십시오. 작은 비누 조각 하나로도 얼마든지 내 몸을 깨끗이 씻을 수 있고, 한 스푼의 설탕으로도 단맛을 낼 수 있으며, 작은 촛불이라도 방을 환하게 밝힐 수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꿈을 가지십시오. 죽음이 내미는 손짓에 눈길조차 두지 마십시오.
죽을 때까지 공부하며 배워가십시오. 공부는 지루한 삶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하며 일상을 새롭게 하는 힘을 주더군요. 공부는 굳어진 내 생각을 풀어 주더군요. 인생은 그다지 살만한 가치가 없다고 하던 굳어진 내 생각을 변화시키더군요. 공부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말처럼 배움으로 위로와 기쁨을 줍니다. 그 기쁨으로 죽음이 내미는 손짓은 뿌리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봉사의 뜰에 서 계십시오. 봉사하며 사랑의 대상을 찾아갈 때 죽고 싶다는 어두운 생각은 물러갑니다.
엄정희 교수
(서울사이버대학교 교수, 북쌔즈 가족상담소 소장, 유튜브 방송<Dr.Duck 결혼예비학교> 진행, 도서출판 북쌔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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