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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4-06-10 (월) 08:55 조회 : 810
다 아는 얘기지만



“아이 생일선물로 / 제라늄 화분을 사놨는데 / 집이 좁은 탓인지 / 이리저리 걸리다 꽃핀 가지 하나가 / 그만 부러져버렸다 // 화분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 생활이 / 원망스럽기도 하고 죄스럽기도 해서 / 묵직한 마음이 며칠이었던가 // 어느날 / 부러진 자리에서 새잎이 난다고 / 아이가 소리치기에 / 한참을 그 새잎만 바라보았다 // 돌이켜보면 소용돌이 같은 상처에서 나는 자랐고 / 아물지 않은 흔적으로 / 세상에 맞서왔지만 // 말이 되지 못해 스스로 어두워진 상처가 / 지금도 용암처럼 넘쳐나와 / 나를 만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 황규관 <상처에서 자라다>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못 보던 화분 몇개가 목양실에 놓였더랍니다. 아주 작은 다육이 하나와 중간쯤 되는 것 그리고 제법 폼이 나는 큼지막한 화분이 ‘앞으로 나란히’ 줄 맞춰 서 있더군요. 대번 눈에 띈 화분 가까이에서 말을 걸었답니다. ‘얘들아, 반갑다. 너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더란 말이더냐.’ 방긋, 반갑기로는 이 녀석들이 더 했을 겁니다. 대체 이방의 주인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인지, 얼마나 궁금했을까요.



얼마나 보고 싶었을 것이며, 그러니 또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기다리다가 지친 ‘땡벌’이 아니어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을지도 모르지요. 아무려나 손 내밀며 인사를 건네 왔을 것인데, 그 고마운 인사에 주파수를 맞추지 못해 알아듣질 못했더라지요.



어릴 적 살던 집은 마당이 넓은 초가집이었답니다. ‘초가집 살이’가 전설 같은 시대가 돼버렸는데, 그땐 ‘기와’만 없는 게 아니었어요. 이것저것 없는 게 참 많았답니다. 일단 겨울에 보일러가 없었어요. 보일러 없는 방바닥은 아궁이 쪽 아랫목과 저쪽 윗목이 하늘과 땅 차이. 아랫목은 펄펄 끓어 장판이 까맣게 타들어 가지만 윗목에선 걸레가 얼어붙습니다. 냉장고가 어디 있답니까. 부엌에 ‘찬(饌)’을 보관하는 ‘장(欌)’을 두고 거기에 음식을 넣어두었다지요. 오래 두고 먹을 수 없으니 이웃과의 나눔이 자연스러웠을 겁니다. 마을에 텔레비전 있는 집이 몇 안 되던, 김일 박치기 한 번 보려고 온 동네 사람이 모여 앉던 시절입니다. 잘살아 보세, 새마을운동이 막 ‘신작로’를 깔아대던.



고려적 같은 얘기지만, 제 기준으로 그게 불과 오십 년 전 얘깁니다. 아득한 것 같지만 동시대를 공유했던 분들에게는 어제처럼 생생한 기억일 겁니다. 다들 어렵다 힘들다 해요. 그게 공연한 엄살은 아니겠지만 ‘어제처럼 생생한 기억’에 비추자면 격세지감일 겁니다. 어쩌면 세상이 이렇게 달라졌을까요. ‘풍요 속의 빈곤’이라던가요. 절대적 빈곤의 시대를 건너왔지만 그게 ‘빈곤’을 다 건넌 건 아닌가 봅니다. 어려운 경제학 용어를 뒤적거릴 것도 없어요. 모자란 게 아니라 넘쳐 나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요. 모자라서 문제가 아니라 남아나서 문제인 거지요. 남아돌아도 나누어지지 않는 시대, 남이 가진 걸 갖지 못하면 그걸 ‘모자람’이라고 여기는 가치 기준이 아픔인 겁니다.



다 아는 얘기지요. 누가 그걸 몰라 이런답니까. 알아도 소용없는, 그걸 ‘어리석음’이라 하던가요. “아이 생일선물로” ‘제라늄 화분’이라, 얼마나 신박한가요. 비싼 게 좋은 것이 되는 자본의 시대에 손바닥 만한 화분 하나의 선물. 거기 자본을 거스르는 생명이 깃듭니다. “꽃핀 가지 하나”에 행복해하고, 그 가지 부러진 자리에서 주저앉은 ‘원망’과 ‘죄스러움’에 사람다움이 있어요. “어느 날” 그 “부러진 자리에서 새잎이 난다”는 소식, 그게 ‘복음-좋은 소식’ 아닐까요. 한참을 바라보다 “소용돌이 같은 상처”와 아직 “아물지 않은 흔적”이 “나를 만들고 있는 것만 같다”는 통찰에 이르렀을 때, 하늘과 땅이 만나던가요. 어쨌든 그날 목양실에서 ‘이걸 누가 갖다 놓았을까’ 헤아리는 건 행복이었습니다.



이창순 목사 (서부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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