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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언제나 재탐색할 수 있습니다
우연히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공인재무분석사(CFA) 신순규 님의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판미동, 2015)』을 읽게 되었습니다. 쉽게 읽히는 책이고, 저자의 삶이 주는 좋은 메시지들이 담겨 있어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던 꽤 유명한 분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아홉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녹내장과 망막박리로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저자의 인생은 참으로 파란만장했습니다. 어머니의 권유로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고, 열세 살에 떠난 미국 순회공연 중 오버브룩 맹학교의 초청을 받게 되는데, 더 큰 세상을 보기 위해 열다섯 어린 나이에 홀로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됩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자신의 장애에 좌절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용기 있는 분,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과 타인들의 ‘편견’도 한계를 만들지만, 장애인 ‘본인의 태도’ 역시 자신을 한계 짓는 중요한 요소이며, 타인의 편견보다 더 해로울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의미심장합니다.
그 후로도 그의 삶은 변화의 연속이었습니다. 음악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스스로의 판단 아래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했고, 하버드, MIT, 프린스턴 등 세계적인 명문 대학에 합격하게 됩니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단순히 전공을 살리는 직업을 찾지 않고, 장애인에 대한 장벽이 있는 직업들을 살피던 중 아직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교수의 길을 포기하고 JP 모건에서 신용 애널리스트로서의 경력을 쌓으며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받은 것을 다시 돌려주는 삶을 살고자 최선을 다하는 그는 시각장애와 난독증 학생들에게 녹음교과서를 제공하고, 한국의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을 돕습니다. 대단한 분입니다. 영상을 찾아보니 인상이 참 선하고 좋으십니다. 굳센 의지로 역경을 이겨낸 강인한 느낌보다는 넉넉하고 유연한 느낌이었습니다. 이 책에 그 비결이 있었습니다.
“길은 언제나 재탐색 할 수 있습니다”라는 챕터에서 그는 내비게이션 이야기를 꺼냅니다. 이 테크놀로지는 운전자가 실수하거나 가는 길 중 일부가 막혀 있으면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다른 길을 안내합니다. 그런데 어떤 내비는 “잘못된 경로입니다”라고 말하는 반면 어떤 내비는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자신은 후자를 좋아한답니다. 돌고 돌다 결국은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 것이 자신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장애물이 나타나거나 문제가 생겨 잘못된 길이라 생각했을 때마다 재탐색하며 가다 보니 지금 이 자리에 이르렀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리라는 원대한 꿈을 안고 유학길에 올랐지만, 오버브룩 맹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꿈은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3개월 만에 큰 결정을 해야 했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 끝에 그 학교에 남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1년 뒤 경로를 재탐색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그 사건으로 인해 그가 미국 부모라고 부르는 데이브와 메리 부부를 만나게 됩니다. 그 뒤로도 생각했던 경로를 벗어나 모든 것이 어그러지는 듯한 순간들이 반복되었고, 끊임없는 재탐색의 과정을 겪어야 했지만, 그 과정들을 통해 지금에 이르게 되었고, 자신의 인생은 어그러지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끝없는 경로 변경, 수많은 좌절 앞에서 ‘유연성’을 얻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삶이 가져다 주는,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유연성’은 지금의 자신을 만든 가장 큰 밑바탕이 되었다는 그의 고백은 인상적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길을 가다 보면 돌아가야 하는 때도 있고,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하는 때도 있다. 아예 목적지 자체를 바꿔야 하는 순간도 있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계속 가는 것이다. 끊임없는 커브길, 굴곡이 심한 언덕길, 장애물이 수두룩한 위험한 길이 언제든 내 앞에 나타날 수 있음을 예상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자신감과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여정은 참으로 유연한 여정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믿음의 여정은 몇몇 규정들을 지켜내면 되는 매뉴얼을 따르는 여정(율법주의)이 아닌 좋으신 아버지와 동행하는 인격적이고, 자유로운 순종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의 은혜 안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유연한 사람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길을 정해 두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쉽게 당황하지 않으며 하나님과 함께 재탐색하며 나아가는 맡긴 자의 평안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한결 유연해진 사도들을 만나게 되는 이유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맡긴 자들이 소유할 수 있는 ‘유연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가 됩니다. 우리는 실수하고, 세상은 우리의 여정에 장애물을 던지겠지만, 주님은 우리의 경로를 재탐색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경로를 다 알 수는 없지만, 뜻하신 선한 곳에 반드시 이르게 하실 것임을 믿기에 감사하며 따라갑니다.
김건우 목사 (좋은씨앗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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