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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의 반란
“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진지하게 다음 기회를 결심하는 학생에게 가볍게 등 두드리며 위로해 줄 수도 있지만, 그러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열심히 해서 되지 않는 일도 많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제가 다루는 분야가 예술이라 그런가 봅니다. 예술에는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면이 있고, 논리가 들어갈 수 없는 선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술은 언어가 멈추는 곳에서 태동한다고도 말합니다.
우리는 많은 예술 작품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미술, 음악, 문학… 세상 별의별 사연들을 담고 있습니다. 전기와 전자 그리고 디지털이 일상생활로 들어온 후 그 다양함과 복잡성은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습니다. 아름답고 진지한 내용도 많지만 너무나 충격적인 것도 있습니다. 도저히 소화하기 어렵고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놀라워 귀를 막게 될 정도의 예술 작품과도 마주하게 됩니다. 비록 눈과 귀를 막고 싶을 만큼 대하기가 힘든 작품이라 해도 우리의 상상을 넘어설 일은 없습니
다. 그래봐야 인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큰일을 마주했습니다. 인간의 심상을 넘어서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고, 볼 수도 없는 일입니다. 생각할 수도 꾸밀 수도 없는 그런 놀라운 일이 오래전에 벌어졌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해서 될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분명 인간계를 넘어선 상상 그 이상의 사건입니다. 구약성경 중 하나인 ‘욥기’입니다.
욥기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세상의 일이 펼쳐짐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 주인공인 욥은 하나님이 인정한 의인이라는 전제입니다. 그 일로 욥은 사탄의 질시를 받게 되어 앞뒤가 서로 얽기는 다시 말해 논리와 상식에 어긋나는 고난을 겪게 됩니다. 그런 욥이 비논리적이며 비상식적인 삶을 버텨내는 여러 다양한 장면이 설정되면서 불행의 밑바닥까지 던져집니다. 그는 누구의 삶과 비교될 수 없는 가장 비참한 바로 그 상황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마침내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전에 그가 누렸던 복보다 더 큰 위로와 축복을 받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상상하기 힘든 말도 안 되는, 더구나 역사적인 기록도 아닌 이야기가 성경 안에 들어 있습니다. 제 머리로는 이해할 수도 없는 사건이 현실적으로 저에게 펼쳐진 것입니다. 그런데 더 알 수 없는 건 한 사람의 역사적 인물인 예수님의 일대기가 욥기와 겹친다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우리의 시간과 공간의 제약 안으로 들어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기록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입니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욥기의 주인공은 욥이 아니라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이며, 진정 부당함을 당한 사람은 욥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의 몸은 멸하지 말라고 명하시지만 정작 외아들 예수님은 죽게 하시며, 아버지로서 차마 볼 수 없는 과정을 그저 바라보고 계십니다. 의인은 욥이 아니라 예수님이고. 억울한 사람은 예수님입니다.
욥기는 이 세상에 예수님이 오기 전 남겨진 픽션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이런 인간의 상상을 넘어서는 예언을 우리에게 전할 수 있는가? 논리적으로 따질 수 없는 사건입니다. 어떤 예술도 이런 욥기의 상상과 예수님의 죽음을 꺼낼 수 없습니다. 그건 인간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불가능한 역사가 이미 이뤄진 세상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목도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여러 모양으로 예수님의 행적을 전하는 역사 기록이 우리가 잘 아는 사도행전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일들도 신비한 오순절 사건 이후부터입니다. 오순절 누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음으로 시작됩니다. 우리가 열심히 할 일은 이 소식을 전하는 일뿐입니다. 꽃이 피어나는 이 계절 성령님의 일하심을 깨닫고 꽃보다 더 놀라운 성령님을 믿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함철훈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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