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던 삶 속으로 들어간 남자
많은 사람의 인생 영화 리스트에 단골로 꼽히는 작품, ‘타인의 삶(원제: Das Leben der Anderen)’은 2006년 개봉한 독일 영화입니다. 동독 시절 비밀경찰 슈타지의 감시를 다루고 있으며, 역사의 격랑에 휘말려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시대가 지향하는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그래서 인간답게 살 수 없지만, 잿더미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변화하며 인간성을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이 영화는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이 연출했으며, 울리히 뮤흐, 세바스티안 코치, 마르티나 게덱 등이 주연을 맡아 2007년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외국 영화상을, 2008년 영국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고, 전 세계 영화상 80개를 수상한 수작입니다. 이 인생 영화가, 스크린을 넘어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연극 <타인의 삶>입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 동독의 국가보위부(슈타지)에서는 10만 명의 비밀경찰과 20만 명이 넘는 정보원이 활동했습니다. 주인공 비즐러는 탁월한 심문 실력과 흔들림 없는 정치적 신념으로 무장한 동독 최고의 비밀경찰입니다. 그는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임무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언제나 원하는 바를 이뤄내고, 작은 일상에서도 사회주의를 실천하는 고독한 인물입니다.
한편 동독의 극작가 게오르그 드라이만은 동독을 넘어 서방세계에서도 읽히는 영향력 있는 작가로, 자신이 속한 체제의 이념 안에서 어떻게든 최선의 작품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성실한 예술가입니다. 더불어 그의 연인인 크리스타 마리아 질란트 역시 재능있는 배우지만 배우로서의 위치와 삶에 대해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체제의 다음 감시 타깃이 됩니다. 그들을 향한 비즐러의 감시가 시작되는데… 각자의 목표와 의무 속에서 이들 세 사람의 삶은 어떻게 서로 엮이게 될까요.
연극 <타인의 삶>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과거 예술가들에 대한 정부의 감청과 감시를 소재로, 영화적 정서를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각 인물이 처한 상황과 선택을 입체적으로 그려냅니다. 인간의 근원적 본성을 고찰하는 데에 있어 조명과 음향을 통해 다양한 무대적인 아이디어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스크린을 통해 느꼈던 도청과 감시의 긴장감이 이번에는 무대 언어로 표현되어 관객들에게 시대의 불안과 섬세한 심리 변화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깊이 있는 연출과 넓은 작품의 스펙트럼을 펼친 손상규 연출이 각색과 연출을 함께 맡고, 무엇보다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하여 기대감을 모읍니다. 심문 및 도청 전문가인 비즐러 역에는 윤나무와 이동휘 배우가 감성적인 극작가 드라이만은 정승길과 김준한 배우가 캐스팅되었습니다. 매력적인 배우 질란트 역은 최희서 배우가 맡았습니다.
‘인간의 선한 의지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드라이만의 집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비슬러는 점차 그들의 예술과 인간적인 면모에 감화되어 자신의 임무와 신념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결국 그는 드라이만을 보호하기 위해 보고서를 조작하는 등 위험을 감수하게 되고 이 선택은 그의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예상치 못한 결말로 치닫는 세 사람의 여정. 영화를 통해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향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다시 한번 떠올리고 싶은 분께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한아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