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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일런트 스카이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6-08-14 (금) 10:43 조회 : 194
별스러운 여성들이 바꾼 밤하늘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이 해온 일 중 가장 낭만적이고 존재론적인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그리고 그럼에도 왜 끝없이 빛을 향해 나아가려 하는가. 로렌 군더슨의 희곡 『사일런트 스카이』는 바로 그 질문들을 한 여성 천문학자의 삶을 통해 섬세하고도 시적으로 풀어내는 작품입니다. 알마 출판사가 선보이는 새로운 희곡 시리즈 ‘GD: Graphic Dionysus’를 통해 국내 독자들은 무대 이전에 활자로, 거대한 우주와 인간의 내면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일런트 스카이』는 실존 인물인 미국의 천문학자 헨리에타 스완 레빗(Henrietta Swan Leavitt, 1868~1921)의 삶을 바탕으로 한 연극 대본입니다. 그녀는 하버드 천문대에서 사진 건판 속 별의 밝기를 분석하던 ‘여성 컴퓨터(Harvard Computers)’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여성들은 연구 현장에서 독립적인 과학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계산과 기록 업무에 머물러야 했지만, 헨리에타 레빗은 변광성의 밝기와 주기의 관계를 발견하며 현대 천문학의 결정적인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훗날 에드윈 허블은 그녀의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 은하 밖에도 수많은 은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인류는 비로소 우주의 크기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은 그녀의 과학적 업적을 단순한 위인전처럼 나열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시대적 한계 속에서도 자신의 세계를 포기하지 않았던 여성들의 삶과 관계, 사랑과 열망을 세밀하게 따라갑니다. 하버드 천문대에 처음 도착한 헨리에타가 현실의 벽과 마주하는 장면은 당시 여성 과학자들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별을 직접 관측하는 대신 남성 연구자들이 촬영한 사진 건판을 분류하고 계산해야 했던 여성들. 그러나 그 제한된 공간 안에서도 그들은 스스로 우주의 질서를 발견해 나갑니다. 작품 속에서 윌러미나 플레밍과 애니 캐넌, 그리고 헨리에타 레빗은 서로를 경쟁자가 아닌 동료로 바라보며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갑니다.



이 작품이 깊은 울림을 주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과학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것에 있습니다. 로렌 군더슨은 별과 우주를 설명하면서도 끝내 인간의 외로움과 사랑, 삶의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작품 초반에 등장하는 헨리에타의 독백은 이 희곡 전체를 관통하는 아름다운 선언처럼 다가옵니다.



“빛의 과학이 저 높은 곳에 있습니다. 아득히 먼 곳, 외로이, 우주의 가장 깊은 어둠에 묻힌 모든 것 중에. 어둠 속엔 수십, 수백억의 예외들. 난 그 예외를 파고 드는 사람입니다.”



이는 단순히 천문학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세상의 기준 밖에 존재했던 여성들,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되었던 사람들에 대한 은유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이 작품은 과거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지금 우리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전히 불평등과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시대 속에서, 여성들이 서로의 빛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이 작품 전반에 잔잔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2024년 가을,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한국 초연으로 펼쳐졌으며, 관객들은 ‘우주와 인간을 함께 바라보게 된 특별한 경험’, ‘무대 위에서 만난 별빛 같은 감동’이라는 반응으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김민정 연출가는 ‘현재까지도 유효한 질문, 예외를 파고드는 열망, 평등과 공정에 대한 의지’로 이 작품의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시대의 한계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았던 사람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끝내 빛을 발견해 낸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별처럼 반짝이는 활자로 만나 볼 수 있는 희곡 작품입니다.



한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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