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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4-07-24 (수) 10:43 조회 : 840
나의 삶을 선택하십시오



어린이의 창의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창조주의 미술 교육의 선각자인 프란츠 치젝(Franz Cizek)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스무 살에 예술 학교 입학을 위해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아이가 많은 집에서 하숙하게 되고, 함께 살던 아이들의 낙서를 지켜보며 학교에서 배우는 그림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린이들은 어른처럼 관찰하고 분석하여 그리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그려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의 상징적인 표현법에 매료된 그는 어린이들에게 미술을 지도하는 교육 과정을 연구하게 됩니다. 그 후 빈 국립 미술공예 학교에 아동 미술학교를 개설하여 6-15세 아동들을 대상으로 창의성과 자유로움을 중시하는 미술교육을 하였습니다. 치젝은 미술 교육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빅터 로웬펠드(Viktor Lowenfeld)를 비롯한 수많은 제자를 양성한 어린이 미술 교육계의 멘토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제자 중 신기할 만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화가의 삶의 이야기가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바로 프리들 디커브랜다이스(Friedl Dicker Brandeis, 1898-1944)입니다.



디커브랜다이스는 빈 미술공예 학교에서 치젝에게 어린이 미술 교육의 중요성과 창의성의 원리를 배웁니다. 그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경험을 쌓은 후 체코 시민권을 얻어 프라하에서 남편과 함께 미술 교사로 활동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42년 12월 17일 나치의 강제 수용소 중 한 곳인 체코의 테레진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는데, 당시 테레진은 모든 강제 수용소 중에서도 최악의 환경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인당 50킬로그램의 짐이 허용되었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옷과 생활용품, 귀중품을 챙긴 반면 디커브랜다이스는 대부분을 미술용품으로 채웠습니다.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수용소에서 만날 어린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녀는 죄수로 수용소에 끌려간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고귀한 사명을 이루기 위해 미술 교사로서 그곳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출발점 자체가 남달랐으니 수용소의 삶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아이들은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아동 기숙사에서 혼자 살아야 했는데, 그녀는 참혹한 수용소에서 날마다 두려움에 떠는 수많은 유대인 어린이에게 미술을 가르쳤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미술 재료를 밀반입하여 나치의 눈을 피해 미술을 가르치고 함께 그림을 그렸으며, 지인을 통해 어렵게 구한 미술작품을 감상시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린이들에게 미술 수업은 치유의 시간이었고, 그렇게 디커브랜다이스는 수용소 어린이들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용소에 갇힌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던 1944년 가을, 그녀는 어린 제자들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동하게 되고 곧 어린 제자들과 함께 가스실에서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생존한 몇몇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증언했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희망과 자유를 상상하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공포와 비참함으로 가득한 수용소 안에서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십수 년 뒤, 그녀가 남긴 큰 짐 가방 두 개에서 테레진 수용소에서 어린이들이 그린 4,700여 장의 그림이 발견됩니다. 그녀가 숨겨둔 것이었습니다. 그 작품들은 프라하의 유대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어떤 참혹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나치에 체포된 죄수가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자유와 희망을 선물하는 미술교사로 정의했기에 그녀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수용소에서 보냈던 2년 남짓한 시간은 죄수로서 비참하게 사는 시간이 아닌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하는 스승으로 사는 보람 있고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짧은 삶이었고, 그녀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삶은 아름답고 무게가 있습니다.



수용소로 끌려가는 그녀의 가방을 가득 채운 미술 도구들은 그녀의 정체성과 그녀의 선택을 말해줍니다. 나의 가방에는 무엇이 가득한지를 돌아봅니다. 나의 가방에 가득한 그것들이 나의 정체성과 나의 선택을 말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샬롬이 있기를 바랍니다.



김건우 목사 (좋은씨앗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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