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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라라라!
제자 둘이 집에 방문했습니다. 인천서 이스탄불로 건너와 소피아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하는 10시간 넘는 여정이라 피곤하겠지만 시차를 극복하기 위해 집 뒷산을 걷기로 했습니다. 지난 밤에 비가 내려 질척한 길을 까치발로 건너야할 때도 있었지만, 맑은 공기와 투명한 햇살은 그 정도의 불편함을 보상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비가 갠 숲이 만들어 주는 풍성한 생명의 리듬감을 호흡할 수 있었습니다. 나뭇잎들이 반짝거립니다. 바람이 지날 때는 소리를 내며 나뭇잎이 일렁입니다. 일상에 빠져 살다가 예기치
못한 기쁨에 무의식적으로 ‘오! 라라라’ 하고 노래를 흥얼거리듯 숲의 소리가 공간을 채우며 하늘로 퍼집니다. 각기 흐르는 개울 물이 모이는 곳에는 바람과 물소리가 어울려 만들어 낸 장엄한 노랫소리를 듣고 풍뎅이가 푸르르 날아갑니다. 숲의 공간은 어느새 낮고 섬세한 소리를 내는 악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이야기 소리가 그 깊은 소리에 공명하며 숨 쉬듯 자연스레 끊기고 이어집니다. 물소리 새소리 그리고 풍뎅이 날아가는 바람 소리에 이야기의 리듬과 박자가 맞춰집니다.
사진으로 십수 년 넘게 모인 우리들의 이야기 주제는 ‘빛’입니다. 들리는 노래에서 보이는 빛(photo)으로 아름다움을 서로 각기 그려(graph)왔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프란체스코, 보나벤투라로 이어지는 빛의 이야기는 최고선이신 혹은 최고의 빛이신 그분으로부터의 아름다운 질서로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지난번 전시에서 선언했듯이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을 ‘토브 라아’라고 합니다. 그 질서 안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채우시기 위해 비움으로 다가가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비움과 아름다움을 선물로 받습니다. ‘보다’라는 단어는 ‘보여주다’, ‘나타나다’로 구약에 표현됩니다. 끊임없이 들려주고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행위는 우리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낮아짐의 ‘바라크’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인간 안에 드러내 나타나시고 보여줍니다. 그것이 ‘바라크’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아름다움을 우리 안에 느끼게 해 주십니다. 이 모든 과정은 우리 인생이고, 노래이며, 텅 빈 우주라는 카메라에 빛을 넣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다가오심을 서로 나누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다가오심과 보여주심 가운데 빛을 받아 자신을 그려 나가고 숲의 소리처럼 악기로 노래하는 과정입니다. 아름다움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걸으며 듣는 숲의 연주와 노래가 빛의 축복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귀에 들리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눈에 보이는 빛으로 이어집니다. 창조된 빛과 창조되지 않은 보나 벤추라가 언급한 빛입니다.
우리 중 한 사람이 빛의 차원에 대해 말을 꺼냈습니다. 사진은 삼차원 이상의 세상을 영차원인점(구멍-렌즈)을 통해 이차원 평면(필름, 모니터) 위에 집약시키는 작업을 빛으로 해내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해내는 빛은 무엇인가? 여기에 우리의 생각은 다시 주위에 머물고 우리를 들여다보게 합니다.
비운 것 같으나 비우지 못한 우리들의 부족함과 자아를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그 비움의 아픔과 고통 가운데 이미 비우신(케노시스) 주님 앞에서 그분의 아름다움을 빛과 소리로 보고 듣는 과정 가운데 있는 우리를 나누게 됩니다. 숲에서 들리는 아름다운 소리도 우리 눈에 보이는 빛도 동일한 감동이며 이야기입니다. 행복이란 이렇게 우리의 삶 가운데 늘 계신 그 빛과 노래로 나를 보고 그분을 듣는 일입니다. 큰 악기처럼 노래하는 숲의 소리와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우리의 아름다움을 찾는 여정처럼 우리의 기쁨은 지금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선물처럼 허락하신 시간과 공간이며 밤하늘 별의 빛이기도 합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삶의 가사들이 멜로디에 맞아떨어지면 오 라라라! 어느 젊은 시인처럼 헤어진 구두끈을 매면서도 우린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함철훈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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