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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화산책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4-08-29 (목) 14:04 조회 : 669
<로드(Road)에서 로드(Lord)>

잊혀진 고도(古都)를 걷다가



사라진 고도(古都), 아니 기억되지 않는 고도라는 표현이 더 옳을 것 같습니다. 백제는 위례(한성), 공주(웅진), 부여(사비성)를 도읍으로 하여 678년의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한성에서 493년, 웅진에서 63년, 사비성에서 122년을 각각 도읍으로 하여 역사와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기원전 18년에 건국한 백제가 660년 멸망할 때까지 31명의 왕이 통치했습니다. 백제의 마지막 왕(31대)은 의자왕입니다. 의자왕의 아버지이자 백제의 30대 왕은 무왕(武王)입니다. 무왕의 고향은 오늘의 익산입니다. 그는 이곳에 왕궁을 지었습니다. 익산의 옛 지명은 솜니이고, 그곳에는 무왕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와 지명이 남아있습니다. 왕궁면, 금마면은 무왕과 함께하는 곳들입니다. 그렇지만 기억되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 3월 아직 쌀쌀한 느낌이 드는 어느 날, 비록 무왕을 알현할 수는 없겠지만 서동요(薯童謠)에 담긴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백제가 남긴 흔적을 따라 걸으면서 역사와 문화를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익산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잊혀진 고도를 걷다가 은둔의 땅인 이곳을 찾아온 벽안의 파란 눈을 가진 이들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894년 봄 어느 날 이곳을 찾았던 선교사는 훗날 한국 교회를 위해서 결정적인 역할, 즉 성경을 완역해서 남겨주는 일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레이놀즈(William David Reynolds)였습니다. 그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변변한 길조차 없었던 시대입니다. 당시 가장 유용한 교통 수단은 배를 이용하는 것이었기에 그는 군산에서 만경강을 거슬러 이곳 익산(춘포)을 찾았습니다.



그의 발걸음은 모험 그 자체였지만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다녀간 후 당장 선교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질 수 없었던 것은 그해 말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 때문이었습니다. 동학이 누그러지자 선교사들은 군산과 전주에 자리를 잡으면서 주변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만경강에 둑(제방)이 없었기 때문에 습지에 형성된 물길을 따라서 이어지는 사람들의 주거지를 찾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걸었을 법한 길을 따라서 걷고 있노라면 갑자기 등장한 낯선 이방인 때문에 놀랐을 이곳 사람들이 그려집니다. 그가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도 이른 봄날이었으니, 혹 지금처럼 을씨년스러웠을지 모르겠습니다.



잊혀진 고도를 찾아 나섰다가 만나게 된 레이놀즈 선교사 그리고 그들이 전해준 복음을 통해서 깨어난 이들의 발자취로 이어지는 근대 역사 이야기는 갑자기 발걸음을 분주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걷다가, 뛰다가, 다시 차를 타고 공간 이동을 하려니 잠시 쉼과 에너지 충전이 필요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찾아든 곳은 황등에 있는 <추억담>이라는 작은 카페입니다. 함열과 황등은 한때 이 지역에서 잘 나가는 중심지였지만 출산 감소와 도시로 떠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쇠퇴해가는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 지역에 복음이 전해지는 초기에 형성된 공동체들이 신앙의 대를 이어가고 있는 곳입니다.



<추억담>은 그 이름에 담긴 의미를 짐작하게 하는 한 고가(古家)에 붙여진 명패입니다. 아주 오래된 집은 아니지만 충분히 근대사의 분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방을 많이 가지고 있는 집으로 한 때는 17가구 정도가 살았다고 하니, 꽤나 많은 사람이 한 공간에서 복닥거렸을 상황을 상상하기에 충분합니다. 따라서 간간이 이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사람들이 찾아와서 옛이야기를 나눠주곤 한다는, 그래서 추억담이라는 명찰을 붙인 것에 의미를 더한다고 하는 주인장의 이야기입니다.



마을의 사랑방, 오가는 길손들의 쉼터 그리고 추억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방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인장은 본래 포토그래퍼로서 사진 작업도 하면서 손님들이 원하면 즉석에서 추억을 담은 사진도 만들어 줍니다. 동행한 이들이 커피 향과 함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추억을 공유하는 기쁨은 행복을 더해줄 것입니다. 마당 끝에 심어진 봄꽃들이 앙증맞게 피어 웃고 있는 정경은 기쁨을 더해줍니다. 햇살 가득한 창가에 앉으면 그 정경이 그대로 추억이 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주인장은 이곳에 깃들면서 집에 손을 많이 대지 않은 이유가 이곳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그들의 추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주인장의 그러한 마음이 참 예쁘다는 생각과 함께 언젠가 기회를 만들어 오늘을 추억으로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잘 찍지 않는 사진 한 장을 주인장에게 부탁해서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종전 목사 (어진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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