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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 염려, 사랑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라 / 사랑아 //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거라 // 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다 / 사랑아” - 나태주 <부탁>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영화를 대라면 <흐르는 강물처럼>을 꼽을 겁니다. 일단 미국 몬태나주의 시골 마을 풍광의 아름다움이 압권인데, 영화의 배경이 1900년대이니 이건 뭐 눈 호강이 아니라 눈 사치인 거지요. 조지 윈스턴의 앨범 중 하나인 <Plains>가 몬테나주의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더군요. 몬태나 남부는 옐로스톤(Yellowstone) 국립공원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미국서 머물 때 너무 가고 싶었지만 끝내 가보지 못해 아쉬움만 동동 굴렀던. 마을을 끼고 흐르는 블랙풋강(Blackfoot River)은 우리나라 동강이나 한탄강처럼 래프팅으로 유명한 강입니다. 블랙풋에 유명세를 더한 것이 ‘플라이 낚시’인데, 영화에서 플라이 낚시를 던지는 장면이야말로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명장면입니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것은 브레드 피트의 ‘멋짐’이 ‘뿜뿜’한 탓도 있겠습니다만, 브레드 피트의 ‘눈빛 연기’가 몬타나의 ‘흐르는 강물’보다 아름답진 않더랍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한 시인이 있다지요. 그 노래가 좋아 따라 부르는 날이 많더라지만 가끔은 ‘정말일까’ 딴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래도 꽃이 더 아름답지 않겠느냐고. ‘이 환장할 봄날’엔 그런 생각이 더 많아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 많은 세상이 아름다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꽃이 많고 나무가 많은 세상-물이 흐르고 구름이 흐르고 별이 흐르는 세상을 보는 건 여지없이 아름답습니다. 천하 만물이 다 하나님의 ‘좋으심’을 따라 제자리에 있으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심에 ‘예’ 하지 못한 건 사람뿐이어서 그런 걸까요.
그렇더라도 어디 풍광과 배경만 아름다웠을까요. 몬타나의 아름다운 풍경만큼 아름다운 건 ‘이야기’입니다. 사는 게 다 영화 같고 소설 같은 것이어서 ‘이야기’가 빠지면 ‘말’이 안 돼요. 그랜드 캐니언 사우스림의 뷰포인트를 다 돌아다녀도 그냥 ‘보기만’ 하는 ‘관광’은 탄성 몇 번만으로도 맥이 빠집니다. 보다 보면 다 그게 그거 같아서 감흥이 식는다니까요. 트래킹은 다릅니다.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전망의 탄성은 삼십 분을 넘기지 못하지만, 언덕 아래로 향하는 길-트래킹은 굽이굽이가 감동입니다. 뷰포인트는 사진으로만 남지만 ‘길’은 이야기가 되기 때문일 겁니다. <흐르는 강물처럼>이 아름다웠다는 건 ‘불건너 강 구경(?)’이 좋았다는 게 아니라 강물과 함께 흐르는 이야기가 아름다웠다는 얘기지요.
영화의 서사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의 집안을 중심으로 흐릅니다. 아버지는 플라이 낚시를 종교처럼 경건하게 대하는 ‘목사’지요. 아버지에게 낚시를 배운 두 아들의 ‘낚시 법’은 자라면서 사뭇 달라집니다. 큰 놈이 ‘10시에서 오후 2시 사이의 네 박자 규칙’을 모범적으로 답습했다면, 작은놈은 틀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낚시 법을 습득합니다. 자기가 배운 낚시 법은 자기 인생이 됩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의 아들’에 어울리지 않는 ‘어긋난’ 인생의 행로와 죽음. 그 아이의 죽음을 두고 아버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름다운 아이였다.”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기를 바랐던, 끝내 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었던 아비의 마음은 죽은 아들에게서 어떤 ‘아름다움’을 보았을까요.
아들의 장례를 마친 주일, 그 어려운 강단에서 전한 ‘목사’의 자기 고백적 설교에 다시 귀를 기울여 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사랑하는 이가 곤경에 처한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주여, 저 사람을 도우려 하나 뭘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이를 돕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모르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주려던 것을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해야 합니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오롯이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라”는 ‘부탁’과 “돌아오는 길 잊을까”의 ‘염려’를 넘어선 아버지를 ‘하늘’에 두고 사는 자식들인지도 모릅니다.
이창순 목사 (서부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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