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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순아, 밥 먹자
어머니 쓰시던 핸드폰을 만지작거립니다.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 완료> 스티커가 붙어 있는 폴더를 올리면 ‘또로로로롱’ 신호음과 함께 여러 개 창이 떠요. ‘단축번호’ 창을 열어봅니다. 1번에는 ‘아들’이 2번에는 ‘며느리’가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눔의 막내아들’이 늘 1번이셨던 어머니의 ‘늙은 손가락’이 눈을 쿡 찔러요. 왈칵 눈물이 쏟아집니다. ‘갤러리’ 창에는 별것도 아닌 사진 몇 장이 들어 있는데, 뭘 잘못 누르셨는지 흐릿한 어머니 얼굴이 셀카로 남아 있습니다.
뚱해 보이는 비스듬한 얼굴이 여간 귀엽지 않더랍니다. 필시 손주들이 찍어 두었을 나머지 사진 몇 장에는 어머니의 밥 짓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금요일, 토요일, 주일까지 어린 손주들이 ‘할머니 집’에 기숙을 했답니다. 몇 날 며칠 외로움을 앓던 ‘할머니 집’이 주말이면 들썩들썩했지요. 말벗이 없어서 온종일 텔레비전 떠드는 소리에나 대꾸하던 어머니. 그 소리라도 없으면 적막강산인지라 주무실 때도 텔레비전을 끄지 않으셨던, 아니 끄지 못하셨던 어머니 집. 손주들이 기숙하는 사흘은 말이 트이고 숨이 쉬어지는, 사람 사는 것 같은 며칠이었을 겁니다. 필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쭉 그날만 기다리셨을 겁니다. 그러다 ‘할머니’ 하며 문 열고 들어오는 손주들을 보면 천사를 만난 것처럼 환해지셨다지요. 아이에게서 천사를 보는 할머니의 특별함이라니.
아이들이 문지방을 넘으면 할머니는 밥부터 지으십니다. 따순 밥 한 그릇을 지어 ‘아그들’ 불러모으는 게 ‘사는 낙’이었던 늘그막 어머니. 핸드폰 사진 속에 담긴 늘그막 어머니의 뒷모습이 딱해 보여 찡, 코끝이 시리더랍니다. 후줄근한 ‘난닝구’ 차림으로 싱크대 앞에 서 계신 어머니. 오래된 난닝구보다 더 축 늘어진 노구(老軀). 그오래된 몸을 비틀고 쥐어짜면 마지막까지 남는게 ‘자식’이었을까요. 당신 몸으로 낸 자식 하나 ‘멕이고’ 살리는 걸 소명처럼 알았을 어머니. 저 작은 몸뚱이로 이루기에는 아무래도 벅찼을 소명이었을 텐데, 그래서 더 악을 쓰며 사셨을까요. 그래서 더 속으로, 속으로만 아프셨을까요.
‘창순아, 밥 먹어라.’ 어스름한 저녁, 동네가 떠나갈 듯 대문 밖으로 자식 이름을 부르시던 어머니. 휙 돌아서지 않고 아들이 따라 들어올 때까지 대문을 지키시던 어머니. 어울려 놀던 친구들과의 한 때가 세상 전부였던 유년. 그땐 ‘밥 먹자’ 하신 어머님의 ‘부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말씀의 넓고 평평한 잎사귀”를 찜 쪄 먹고 “막 푼 뜨거운 밥에서 피어오르는 긴 김”에 하품이 나던 시절. ‘이깟 밥상’으로 불러 모은 어머니의 ‘부름’이 야속하기만 했을까요. 아무려나 기껏 차린 밥상을 먹음직스럽게 먹지 못하는 입 짧은 막내아들의 더딘 숟가락에 저민 마음을 찬처럼 올려 두셨을 어머니.
엊그제가 어머니의 기일이었답니다. 한 해가 지나고 다시 한 해를 지나 맞는 그 시간. 왜 그렇게 ‘엄마 생각’이 많이 나던지. ‘밥 먹자’ 하시던 어머니 말씀은 또 왜 그리 귓전을 울리고 마음 저미게 하던지. ‘늙은 어머니’의 다 늙은 음성이 ‘멀리서 들리는 천둥(遠雷)’처럼 울리던지. 그래요, “늙은 어머니가 / 마루에 서서 / 밥 먹자” 하셨던가 봅니다. 오늘은 그 말씀의 넓고 평평한 잎사귀를 푸른 벌레처럼 다 기어가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소용없는 일이라고요? 천만의 말씀. 구십 평생 이 땅에서 차리신 밥상은 약과였을 거예요. 하늘 밥상 앞에서 어머니는 지금도 자식 이름을 먼저 부르실 겁니다. ‘창순아, 밥 먹자.’
이창순 목사 (서부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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