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드(Road)에서 로드(Lord)>
월악산 자락길에서
우리나라 국토의 70%가 산지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기에 어디를 가든지 산길을 만나는 것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은 서울이 산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에 놀랍니다. 또한 우리나라 어느 도시든 산지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에 놀랍니다. 서양의 도시들은 특별한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평야에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에 산지 비율이 높아서 도시와 산이 가깝고, 산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이기에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우리네만큼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없다고 하니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그렇다고 만만하지만 않은 것이 우리나라의 산들인 것도 잊으면 안 될 일입니다. 설악산처럼 악산(岳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들이 많습니다. 岳(악)은 큰 산이라는 의미지만 현실적으로 험한 산이라는 의미로 통합니다.
산이 많은 만큼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지 맑은 물길과 산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중부 내륙에 거대한 인공 호수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호수가 만들어지면서 물길이 따로 만들어졌고, 그 언저리는 호수 경관을 조망하면서 걸을 수 있는 자락길이 있습니다.
충주호를 만들어주는 큰 산, 월악산 자락에 깃들면, 골은 물길과 함께 사람을 받아주는 길목이 되어줍니다. 체력에 문제가 없다면 월악을 정복하는 것도 괜찮겠지만, 만만한 산은 아니기에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느 곳으로 깃들든지 큰 품으로 품어주는 월악은 쉼과 회복을 안겨줍니다. 시름도 내려놓게 하고, 그렇게 걷다가 보면 폐부의 오염물까지도 자연스럽게 정화시켜주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그만큼 맑은 공기를 생산하고 있는 밀도 높은 삼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깊은 골이 품고 있는 넉넉한 물과 산소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것은 도시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게 됩니다. 게다가 이곳은 영남으로 가는 삼남대로가 지나는 곳이기에 사연도 많습니다. 왜국(倭國)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치열한 전장이기도 했고, 삼국시대에는 반도 안에서 치열한 경쟁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가 골(谷)마다 사연이 많고, 의지할 곳 없는 민초들은 하늘을 향해 눈물로 세월을 이겨야 했던 역사의 현장들도 자락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선인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에서는 잠시 발길을 멈추게 됩니다.
길은 이곳과 저곳을 이어주지만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이어줍니다. 월악산 주변의 골짜기와 물길을 따라서 걷노라면 충주호로 모여들게 됩니다. 그렇게 모여든 곳에는 여기저기 초릿대를 물에 담근 채 세월을 낚고 있는 태공들을 만나게 됩니다. 어디서 온 이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도 월악의 품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조용히 앉아서 물욕에 사로잡혀 더 많이 잡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월악의 자락길을 오랜 세월 이어주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가다가 보면 만나는 쉼터가 있습니다. 예쁜 명패를 갖고 있으면 좋겠지만, 정형화된 명패를 달고 있는 쉼터는 <충주커피박물관>입니다. 박물관이라는 이름 때문에 왠지 딱딱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찾아들어 가노라면 이내 호기심이 발동하고, 곳곳에 주인장의 손길을 느끼면서 부담 없이 카페에 깃들도록 맞아줍니다. 어떻게 다 구했는지 모르지만, 공간마다 커피와 관련한 기구들을 적절하게 배치해놓았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커피를 마시게 되는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커피를 향한 주인장의 관심과 의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엔틱한 가구들과 화려한 커피잔들이 관심을 가지게 합니다.
이런 곳에서 테이크아웃용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는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커피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박물관에서는 절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인장이 커피마니아로서 그정도 기본을 모를 리 없기 때문입니다. 최적화된 로스팅과 숙성 과정을 거친 원두를 즉석에서 갈아서 내려주는 커피 한 잔은 시름을 잊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게다가 아름다운 커피잔들은 그 자체로 기쁨을 주는데, 거기에 담긴 커피는 향과 함께 여유로움과 멋스러움을 더하여 주니 참 좋습니다.
커피잔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작은 공간에 자리하고 앉노라면, 잠시지만 중세 유럽의 한 고택에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과 앉아도 다르지 않은 느낌으로 함께 쉼을 누리기에 충분하고 멋진 공간입니다.
혹여, 월악산 자락 어딘가에 깃들든 이곳 <충주커피박물관>은 찾는 이들에게 쉼과 함께 커피의 맛과 향이 회복의 기회를 만들어줄 것입니다.
이종전 목사 (어진내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