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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화산책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5-02-13 (목) 12:08 조회 : 693
<스포츠 살롱>

당신에게 있어 ‘최고의 순간’은 언제입니까?



얼마 전, 20대 후반 청년으로부터 질문을 하나 받았습니다. “작가님, 작가님은 선동열, 박찬호, 류현진 중 누가 최고라고 생각하세요?” 여러분은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저는 받은 질문에 대해서 바로 대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세 선수 다 저마다의 시대 속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야구팬들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 선수에게 마음이 기울어 있습니다. 그건 바로 ‘국보급 투수’, ‘무등산 특급’, ‘나고야의 태양’ 등으로 불리었던 선동열 선수입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야구에 흥미를 붙여가던 저의 유년 시절 전성기 모습을 보여주었던 선동렬 선수가 저에겐 가장 강렬했던 거 같습니다. 청소년 시절에 만난 박찬호, 청년 시절에 만난 류현진 모두 대단한 투수지만, 어릴 적 저의 야구 판타지를 채워주었던 선동열 선수만큼의 임팩트가 남아 있지 않는 셈입니다. 기왕 제가 선동렬을 선택했으니 그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의 에세이 『야구는 선동열』(민음인)을 토대로 한 가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선동열 선수는 그야말로 한국 야구에서 이룰 수 있는 명예와 업적은 다 이루고 일본 프로야구로 진출하는데요. 대다수 팬은 선동열 선수가 당연히 일본 야구에서도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첫해에 선동열 선수는 한국에서의 선동열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선동열 선수는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했던 1996년, 그해 가을 9월 중순에 2군으로 내려가는 굴욕적인 상황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천하의 선동열이 2군으로 내려간 겁니다. 특별한 부상이 있어서도 아니고 그야말로 실력이 부족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2군으로 내려가도 선동열의 밸런스가 도통 올라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결국 선동열이 뛰던 주니치 드래곤즈의 호시노 감독은 강수를 두게 됩니다.



“선, 올해는 포기해라. 안 되겠다. 밸런스를 회복해서 내년 시즌을 준비하자. 대신 하이사이리그에 가서 공을 던져라. 네가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던져라. 그래서 네 폼을 되찾아라.”



하이사이리그는 미래의 자원인 신인들을 테스트하는, 사실상 2.5군이나 3군에 해당되는 리그라고 합니다. 즉, 천하의 선동열이 2군도 모자라서 3군으로 내려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겁니다. 이 상황에 대해 선동열을 이렇게 기술합니다.



“더 이상 분노도, 슬픔도 없었다. 스스로에게 냉정해졌다. 나 자신에 대해 엄격하게 판단하기로 했다. ‘그래 맞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다.’ 정직하게 나를 인정하고 나니 스스로에게 겸허해졌다. ‘그래,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보자. 노력을 다한 뒤에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평가받는다고 해도 결코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보자.’ 그랬다. 비로소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한국의 국보 투수라는 명예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졌다. 등 뒤에 꽂혀 있던 태극기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때 비로소 나는 새롭게 출발할 수 있었다.”



그 뒤의 스토리를 예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실 겁니다. 선동열 선수는 일본인 코치의 도움으로 아주 기본부터 다시 시작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겨우내 땀 흘려 훈련하고 다음 해 화려하게 부활을 하고, 그로부터 3년간 일본 야구에서도 최정상급 활약을 한 뒤 정상의 자리에서 은퇴를 합니다. 어쩌며 뻔해 보이는 이 결말로 갈 수 있었던 소중한 지점, 즉 선동열이 3군행을 통보받고 품었던 생각이 저에겐 특별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진 3군행을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사실 여전히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자신에 대한 팀의 대우에 따라서 성적이 오르락내리락 하곤 합니다. 그럴만도 하죠. 그들은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동열은 고백합니다. “그래,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보자”라고. 이 고백이 있었기 때문에 선동열 선수 인생 마지막 3년이 멋지게 마무리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 고백은 스포츠 분야뿐 아니라 지금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에게도 적용되는 고백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다시 질문을 던져봅니다. 선동열, 박찬호, 류현진, 이 세 선수 중 누가 최고의 선수일까요? 확실한 사실 하나는, 1996년 가을, “그래,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보자”라고 고백했던 선동열의 마음만큼은 최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돌아보니 저 질문은 우문(愚問)입니다. 다만, 각 선수들마다 최고의 ‘순간’들이 존재할 뿐이겠죠.



소재웅 작가 (『전자슈터 김현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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