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CH 정기구독
정기후원
   

[칼럼] 문화산책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5-02-13 (목) 12:06 조회 : 635
<로드(Road)에서 로드(Lord)>

남한산성 둘레길을 걷다가



수도권에서 잠시나마 호연지기를 느끼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은 많습니다. 하지만 자락길이나 강변 길이 대부분입니다. 혹은 가파른 등산길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높지 않으면서도 하늘과 대지를 굽어볼 수 있는 산마루를 이어서 걸을 수 있는 길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렵지 않게 산마루를 걸으면서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는 그러한 길이 한 곳 있습니다.



그곳은 수도권 어디에서도 1시간이면 다다를 수 있는 곳이고, 역사적으로 유서도 깊은 곳입니다. 특별히 오랫동안 국가적인 아픔을 간직한 채 선뜻 드러내지 못하고 숨을 죽이고 있다가 1963년에야 국가 사적으로 지정이 되었고, 1971년 경기도 도립공원, 201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됨으로 비로소 세상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남한산성입니다. 산성 동쪽에 있는 남한산을 기점으로 산마루를 이어 산성을 쌓고 그 안에 행궁을 만들어서 도성(都城)으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남한산성의 역사는 여러 설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삼국 시대에 축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시대마다 경험하게 되는 것은 달랐지만 도성 혹은 임시 도성의 기능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산성의 규모도 상당하고 성안에는 물이 풍부하며, 지리적으로도 산성에 매우 적합한 곳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합니다.



이 산성에 11.76km의 둘레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남한산성은 삼국 시대부터 축조되었고, 한강을 중심으로 도읍을 정했던 백제나 조선은 매우 중요한 성으로 여겼습니다. 가장 확실한 기록으로 남겨진 아픈 역사는 남한산성의 존재를 알게 하는 상징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이 성을 가장 절박하게 활용한 것은 조선조입니다. 인조와 숙종 때 각종 시설물을 갖추고 성도 증축하며 성벽을 보완했습니다. 인조는 1624년부터 26년까지 2년간 공사를 진행해서 마치 자신이 그렇게 될 것처럼 남한산성을 임시 피난지로 준비했습니다.



이듬해인 1627년 정묘호란을 경험하였고, 1636년 청나라 태종이 12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해왔을 때(병자호란) 겨우 이곳으로 피신한 인조는 45일 만인 1638년 1월 30일에 항복함으로 조선국 왕으로 굴욕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때 인조는 소복을 입고 청나라 황제 황태극이 앉은 단상 앞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려서 사죄를 구하는 여진족의 의식(三拜九叩頭禮)을 행해야 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인조가 경험한, 즉 조선이 경험한 가장 치욕의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산성들은 이처럼 철저하게 수비를 위한 성입니다. 혹여 비록 힘이 없어서 그랬다고 할지라도 선량한 민족이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 산성들입니다. 동시에 역사를 돌아보면서 국력이 약해지면 겪게 되는 국가적인 재난은 단지 왕만이 아니라 수많은 국민이 희생을 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남한산성이 2014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찾는 이들이 많아졌고, 찾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계절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는 산성둘레길은 건강을 지켜주는 것은 물론 자연에서 쉼을 얻기에 넉넉한 품을 내어줍니다.



때에 따라서, 컨디션에 따라서 혹은 동행하는 사람에 따라서 걸을 수 있는 난이도나 거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산성둘레길은 수도권에서 가장 걷기 좋은 길입니다. 그래서인가 철을 따라서 걷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변을 걷고, 식사도 하고, 자연에 안긴 분위기에서 커피와 함께 쉴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있습니다. 성 내에 카페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안온함과 계절에 따른 분위기를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느끼게 해 주고, 주변 환경과 또한 그 환경과 잘 어울리게 지은 집은 카페라기보다는 가정집 같은 <아라비카>입니다. 주차장에서 내리면서부터 이런 쉼터가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할 만큼 숨은 곳이기도 합니다.



입구와 주변 공간에 비해서 카페는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들어서는 순간 쉼을 위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가득합니다. 자리에 앉으면 눈높이에 넓은 창이 있고, 시선은 그대로 바깥 자연에 머물게 됩니다. 창밖에서 눈을 사로잡고 있는 자연은 그 계절을 가장 아름답게 느끼게 합니다. 두런두런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벽에 진열된 커피잔들로 눈이 갑니다.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솜씨에 경탄하게 됩니다.



게다가 ‘카페는 많지만 커피는 없다’는 표현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곳에서 경험하게 되는 커피는 나름 만족과 여유를 느끼게 합니다. 크지 않은 공간 하지만 언제 찾아도 그 계절과 함께 쉼을 누릴 수 있는 공간에서 오늘도 잠시 머물다 갑니다.



이종전 목사 (어진내교회)

   

foot_이미지
개인정보취급방침 이용약관 이메일무단수집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