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CH 정기구독
정기후원
   

[책] 맡겨진 소녀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5-02-13 (목) 11:43 조회 : 703
때로는 밤이 끝나지 않을지라도



최근 우리나라 서점가에서 은근한 화력을 자랑하며 작품을 연이어 한국 독자들의 서가에 올리고 있는 아일랜드 태생의 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클레어 키건(Claire Keegan)입니다.



클레어 키건은 1968년 아일랜드 위클로에서 태어났습니다. 17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로욜라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정치학, 웨일스대학교에서 문예 창작, 더블린트리니티칼리지에서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가디언’지는 그녀의 작품을 두고 “탄광 속의 다이아몬드처럼 희귀하고 진귀하다.”라고 평했습니다. 24년간 활동하면서 단 4권의 책만을 냈는데, 모든 작품이 예리하고 우수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첫 장편소설 『맡겨진 소녀』를 집어 들었을 때, 다른 장편소설들에 비해 얇고 설정도 단순한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짧은 이야기와 담담한 필치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녀의 재능에 감탄했습니다. 이 소설은 어느 여름날 엄마의 출산을 앞두고 먼 친척 킨셀라 부부의 집에 맡겨진 한 아이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단지 집안에 입이 많고 돌보기 버겁다는 이유로 애정 없는 가족으로부터-아주 가깝지도 않은 친척 부부에게 떠맡겨진 채 잠시 키워지게 된 작은 소녀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부모의 무관심 속에 자라 그 나이에 맞는 호들갑도, 소란함도 없는 아이는 킨셀라 부부의 집에서 지내면서 아일랜드의 목가적인 풍경 속에 숨어있는, 자신과도 닮은 보잘것없는 존재들에게 시선을 줍니다. ‘가지가 땅에 끌리는 수양버들’, ‘더 이상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개’, 그 속에서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방치된 자신을 발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킨셀라 부부는 그녀를 가슴 따뜻한 애정과 다정함으로 대합니다. 자신들도 아픈 과거를 지나왔기에 부부는 이 말이 없는 소녀의 마음속의 말을 온전히 들어줍니다.



그들은 그녀의 필요를 채워주고, 마음을 주고, 신경을 써 줍니다. 처음 머물게 된 밤 침대에 오줌을 싸도 모른 척 해 주는 아주머니, 아이에게 매일 우편함까지 달리기를 시키며 시간을 재주는 아저씨는 그렇게 한 아이의 일상이 됩니다. 아이는 그 시간 속에서 제대로 대답하는 법, 책읽는 법, 계절을 보내는 법을 배웁니다. 큰 갈등은 일어나지 않지만 어쩌면 아이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따뜻한 여름이기에, 이 계절은 그 자체로 한 인생의 커다란 사건이 됩니다.



키건은 1999년 첫 단편집인 『남극(Antarctica)』으로 데뷔 후 2007년, 두 번째 작품 『푸른 들판을 걷다(Walk the Blue Fields)』를 출간해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가장 뛰어난 단편집에 수여하는 에지 힐상을 수상했습니다. 『맡겨진 소녀』는 2009년에 출간되었는데,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수상했고 <타임스>에서 뽑은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되었습니다. 그 후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오웰상(소설 부문)을 수상하고,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습니다.



여름을 지나 남동생이 태어나고, 다시 원래의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그 무수한 기억을 마음속에 담을 줄 알게 됩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묻는 엄마에게 ‘아무 일도 없었어요’라고 대답하고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만큼 충분히 배웠고, 충분히 자랐다고. 소녀는 작별 인사를 한 후 떠나는 킨셀라 부부의 차를 온 힘을 다해 쫓아갑니다. 그리고 온 힘으로 아저씨에게 안기며 ‘아이다운’ 감정을 터뜨리는 마지막 장면은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우리 모두가 지나온, 유년의 신비를 떠올리게 하는 순간입니다.



한아름 기자

   

foot_이미지
개인정보취급방침 이용약관 이메일무단수집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