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CH 정기구독
정기후원
   

[칼럼] 주일칼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5-08-22 (금) 15:12 조회 : 276
그럴 수도 있지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지만 다시 눈을 감고 싶은 날,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고, 누가 나를 알아봐 주지 않으면 괜히 서운해지고, 그렇다고 딱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마음이 가라앉는 날. 그런 날엔 생각이 많아집니다. “나는 왜 이렇게 감정 기복이 심하지?”, “이렇게 지치는 게 정상일까?”, “나만 이런가?”



사실, 이런 고민은 어느 시기를 살든 누구나 한 번쯤 겪습니다. 20대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경쟁의 압박이, 30~40대에는 관계의 피로와 현실의 무게가, 그 이후에는 내 역할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은 불안이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우리 안의 감정을 흔듭니다.



어떤 날은 감정이 너무 벅차서 견디기 힘들고, 어떤 날은 아예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 무의식적으로 차단하기도 하죠. 몸도 정직하게 반응합니다. 쉽게 피곤하고, 잠이 오지 않고, 가슴이 답답하고, 위가 아프기도 합니다. 감정은 무시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감정은 억누를수록 몸의 언어로 바뀌어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정을 ‘부정적인 것’, ‘통제해야 할 것’으로 여깁니다. 불안하면 “괜찮아질 거야”라며 눌러 담고, 분노가 올라오면 “참자, 어른이잖아” 하고 억제하고, 우울하면 “이 정도면 버틸 만하지”라며 지나갑니다. 하지만 이 모든 감정은 사실 우리 마음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일 수 있습니다. “지금 너, 너무 힘들다.”, “이 관계가 너를 지치게 하고 있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지 않니?”



이 메시지를 억지로 끌어내거나 없애려 하지 말고, 조용히 앉아 들어주면 어떨까요?



황국명 시인의 시 <울어야만 웃을 수 있다>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눈물이 메마른 세상 / 울기보다는 / 웃기를 원하는 이들이 엉겨 사는 곳 // 아무리 애절한 사연이 / 신문에 묻어 있어도 / 통곡의 몸부림이 그려져 / 동공을 밀고와도 // 그저 그렇게 / 바라보는 사람들 / 눈물없이 볼 수 없다는 영화관은 파리들만 날리고 / 웃기고 부수고 죽이는 곳에는 / 우글거리는 돌파용 인구들 // 무슨 캠페인처럼 / 사고의 영역을 잠식시키는 / 소문만복래 // 그러나 / 알아야 한다 / 분명히 알아야 한다 / 다윗처럼 / 예레미야처럼 // 그리고 / 예수 그리스도처럼 / 울어야한다는 것을 / 애통하는 자만이 / 웃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울어야만 웃을 수 있다(황국명)



이 시처럼, 진짜 기쁨은 울 줄 아는 사람에게 온다고 말합니다. 웃음은 눈물 너머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습니다. 감정을 모른 척하고 억지로 웃는 삶은 언젠가 금이 갑니다. 진짜 회복은 감정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울어야 할 때 울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니 오늘은 감정에 솔직해져 봅시다. 조금 슬프면, 그냥 슬프다고 말해 보세요. 화가 나면,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적어 보세요. 불안하면, 그 불안이 말하는 ‘진짜 원인’을 들여다보세요.



그리고 너무 벅차다면, 가까운 누군가에게 말해 보세요. “나 요즘 좀 지쳐. 그냥 위로받고 싶어.” 그 말 한마디가 내면의 문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됩니다. 감정을 느낀다고 내가 약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입니다. 누군가의 기준이나 시선을 넘어서 당신 자신의 마음과 마주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하루가 쌓이고 쌓여 어느 날, 다시 웃을 수 있는 당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웃음은 억지로 짓는 표정이 아니라 깊이 울었던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진짜 웃음일 것입니다.



당신의 오늘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감정도, 눈물도 그리고 다시 웃을 수 있는 용기까지도. 오늘 하루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이 되어도 좋습니다.



채윤성 대표 (올포워십)

   

foot_이미지
개인정보취급방침 이용약관 이메일무단수집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