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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설교자 토마스 롱(Thomas Long)은 조지아주의 한 장로교회에 출석하던 어린 시절, 어느 주일에 허름한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예배당에 불쑥 들어왔던 일을 종종 언급했습니다.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인지, 위험한 부랑자인지, 탈옥한 죄수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교회에 속한 사람 중 하나가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그가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자, 안내를 맡은 이들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습니다. 잠시 후 주보를 건네주기는 했지만, 친절히 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맨 뒤의 좌석에 홀로 앉았고, 아무도 곁에 앉지 않았습니다. 예배 시간 내내 목회자와 교인들은 긴장된 눈빛으로 그를 주시했고, 헌금통이 그에게 전달되었을 때 그 안의 돈을 꺼내 갈지 모른다고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그를 경계한 것입니다. 무례하게 행동했다거나 못된 짓을 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낯선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두가 그를 불편하게 여겼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예배당을 떠났습니다. 그는 그저 예배를 드리러 왔던 것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었지만, 그날 그 예배 후 교회 마당에 모인 어른들이 낮고 심각하게 주고받던 이야기를 롱은 기억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시험하신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낙제점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낯선 사람을 환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배드리기 위해 교회를 찾아온 하나님이 보내신 우리의 형제, 하나님의 백성을, 우리는 형제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타자로 여기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나의 형제자매로 보내십니다.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과만 살게 하지 않으시고, 나와 다른 사람들, 기질과 생각과 신념이 다른 불편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의 됨됨이를 시험하실 뿐 아니라 더 아름답고 단단하게 빚어내시고, 제자도의 모험을 할 기회를 주십니다. 이러한 경험과 훈련을 통해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체험하게 되고, 그 순간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능력을 의존하며 살 때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됩니다. 복음의 삶이며, 은혜의 삶입니다. 용기를 내어 주님께서 주신 그 기회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갈등과 혐오의 시대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타인들을, 용납하고 사랑하기는커녕 미워하고 혐오하는 시대입니다. 그런 생각과 행동을 선동하고 조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학교에서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이해는 되지만, 서글프기도 합니다. 타인을 경계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롱의 고백처럼,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교회를 시험하고 계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예수님 다시 오실 때가 가까워 우리를 준비시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나는, 우리는, 교회는 어떤 점수를 받고 있을까요? 주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우리의 실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갈등과 혐오를 부추기는 시대이기에, 낯선 이를 경계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시대이기에, 그러한 이 시대의 거센 파도와 맞서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 선하시고 인자하신 아버지의 크신 사랑이 우리 안에 충만하여, 복음의 은혜, 십자가의 능력이 모든 것을 압도할 때만 가능한 삶입니다. 때문에, 더욱 십자가를 묵상하고 굳게 붙들어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합니다.
종종 “힘내세요!”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응원하는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힘을 빼야 할 때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저는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장 20절, 개역개정).”
바울이 고백하고 있는 이 귀하고 복된 삶을 소원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샬롬이 있기를 바랍니다.
김건우 목사 (좋은씨앗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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