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삶을 다시 쌓아 올리며
아름다운 우리의 궁궐, 창경궁에는 동양 최대이자 한국 최초의 유리 온실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일제가 순종을 창덕궁에 유폐한 뒤 왕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동물원과 함께 1909년에 건립했다고 합니다. 이곳은 철골 구조와 유리, 목재가 혼합된 근대 건축물로 창경궁 수난사에서 살아남은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김금희 작가는 이 대온실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배경으로, 폭넓은 상상과 특유의 섬세한 서사를 엮어 장편 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로 만들어냈습니다.
30대의 ‘영두’는 창경궁 대온실 보수 공사의 백서를 기록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그녀는 석모도 출신으로, 2003년 중학생 때 서울로 유학와 창덕궁 담장을 따라 형성된 마을인 원서동에 머문 적이 있습니다. 영두는 ‘창경궁’이라는 말을 듣고는 마음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처음엔 그 일을 맡기를 꺼리지만, 자신을 돌봐주었던 낙원하숙의 주인 할머니 ‘문자’와 그녀의 손녀 ‘리사’와 얽혔던 어린 시절의 아픈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좋은 부분을 오려내 남기지 못하고 어떤 시절을 통째로 버리고 싶어 하는 마음들을 이해한다. 소중한 시절을 불행에게 다 내주고 그 시절을 연상시키는 그리움과 죽도록 싸워야 하는 사람들을.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 무거운 무력감과 섀도복싱해야 하는 이들을. 마치 생명이 있는 어떤 것의 목을 조르듯 내 마음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을 천천히 죽이며 진행되는 상실을, 걔를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이 가르쳐주었다.” p.156-157
작가는 과거와 현재의 두 축을 오가며 ‘무너져 내린’ 삶의 여정을 담담하게 서술합니다. 현재 영두가 참여하는 대온실 보수 공사와 더불어 일제 강점기에 대온실을 만든 일본인 후쿠다 노보루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과거 서사는 실제 창경궁 대온실 공사의 총책임자 후쿠바 하야토와 그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창경궁과 연관된 다양한 인물들을 근대의 역사적 장면들과 연결해 생생하게 형상화했습니다.
이야기는 보수 공사 중 모두를 놀라게 한 비밀이 땅 밑에서 발견되며 반전을 맞게 됩니다. 발견된 역사적 흔적이 자신의 상처받은 어린 시절을 보듬어주었던 문자 할머니와 연관이 있음을 직감한 영두는 점점 더 그녀의 삶과 자신의 과거 속으로 파고듭니다. 문자 할머니가 겪은 현대사의 거친 파고와 아픈 비밀을 양지로 끄집어내면서, 영두는 곧 자신의 상처와도 마주하게 된다. 오래도록 용서하지 못하고 회피했던 스스로를 껴안으며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더 이상 딱딱한 공문서가 아닌 한 인물이 자신의 삶을 재건하는 기록으로 완성됩니다.
이 작품은 김금희 작가가 활동을 시작한 지 15년 만에 처음 선보이는 역사소설입니다.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 작가는 『너무 한낮의 연애』, 『복자에게』 등 따뜻하면서도 깊이 있는 필치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이 작품 또한 따뜻한 시선을 통해 과거에 묻힌 건축물을 인생과 연결지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눈부신 찬가가 되었습니다.
과거는 늘 크고 작은 후회를 남깁니다. 역사도, 개인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각자가 가진 인생의 히스토리 안에 무너져 내린 부분, 혹은 덮어두고 오랜 시간 들여다보지 않았던 부분이 있다면… 다시 끄집어내고 정리하고 쌓아 올리는 과정이 꼭 필요할 것입니다. 그 과정이 건축물 수리처럼 쉽지 않겠지만, 해낸다면 그곳은 반드시 인생의 찬란한 빛을 담은 공간이 될 것입니다.
한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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